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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환의 블랙박스 2] 단일팀 계속 회피하다 마지못해 수락한 한국

그동안 남북 관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는 대부분 남한에서 생산된 정보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경향이 짙었다. 반면 북한은 어떤 의도와 주장을 가지고 이슈를 대했는지는 알 방법이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남한 중심의 역사 서술이 지배적이었고 국제사회의 시각 내지 북한의 시각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필자는 스위스 로잔에 있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산하 올림픽스터디센터(OSC)에 가서 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북한 문헌과 30년이 지난 외교부 공개 문서를 통해 세 주체의 입장을 서로 비교할 수 있었다. 이 연재에서는 남과 북 그리고 IOC 자료에 근거해 그동안의 남북 체육 이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파헤쳐 본다. 이 글은 필자의 논문 <남북 스포츠 분단의 역사적 함의>를 기사에 맞게 수정·보완했다. <기자말>

[최진환 기자]

1957년 북한 올림픽위원회¹를 잠정 승인한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독일 단일팀 구성의 경험을 토대로 남과 북에 지속적인 만남과 접촉을 주문한다. 하지만 한국올림픽위원회(KOC)는 이를 거부한다. 남북 사이에 비무장지대(DMZ)가 있어 서로 오갈 수 없고, 독일과 달리 여전히 휴전 중이며, 군사적 공방과 간첩과 첩보 활동 등으로 불신이 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¹IOC는 남북 단일팀을 전제로 북한올림픽위원회를 승인한 만큼 북한의 국호인 DPRK OC라고 하지 않고 North Korea OC로 지칭했다. 훗날 북한은 57년에 DPRK OC로 승인받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북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홍명희는 민족이 하나로 뭉쳐 세계 무대에 남과 북이 함께 서야 한다고 강조하며 단일팀이 성사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IOC에 밝힌다.

남북 단일팀 구성을 적극 중재한 오토마이어² IOC 사무총장은 1959년 7월 7일 KOC에 서신을 보내 남북이 중립 지역에서 만나는 것에 대해 북한이 대표단을 보내겠다고 전해왔으니 남한의 동의 여부를 알려달라고 한다.

(²스위스 출신으로 1946년부터 IOC 사무총장, 1964년 10월 6일 사임. 1970년 2월 10일 사망함. IOC 내에서 한국문제에 깊이 관여한 중요 인물임)

이상백³ 대한체육회 부회장은 이 서신의 내용을 브런디지⁴ IOC 위원장에게 알리며 오토마이어와 한국을 방문해 판문점과 비무장지대를 같이 볼 것을 제안한다. DMZ에서의 군사적 긴장과 대립의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해 보라는 것이었다.

(³1951~1959년 대한체육회 부회장. 1960년 7월 KOC 부회장 겸 회장 권한대행. 1964년 10월 도쿄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 1966년 사망)(⁴브런디지 Avery Brundage는 1886년에 미국에서 태어나 육상선수 활동을 하였고, 1946년 IOC 부위원장이었으며, 1952년부터 1972년까지 IOC 위원장을 지냈다. 1975년 5월 28일 사망했다. 남한과 북한의 IOC 가입과 냉전 시기 올림픽에 관한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인물이다. 그가 재임시절 주고받은 서신, 신문기사 등을 모아 놓은 자료가 브런디지 컬렉션이다. 이 자료에 남과 북 IOC 간의 블랙박스가 존재한다.) 

▲  브런디지(Avery Brundage)는 1886년에 미국에서 태어나 육상선수 활동을 하였고, 1946년 IOC 부위원장이었으며, 1952년부터 1972년까지 IOC 위원장을 지냈다.
ⓒ 대한체육회

그러나 이상백의 바람과 달리 브런디지 위원장은 이를 거절한다. 그는 이상백에게 보낸 답장에서 남북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IOC는 올림픽에 참가하려는 것에 대해 정치적·종교적·인종적으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브런디지 위원장은 이어 ‘IOC 집행위원회에서 한국 문제가 재논의 된다, 한국 외교관 일부가 몇 가지 공식 성명을 발표했는데 도움이 안된다, 이러한 정치개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라고 오히려 충고한다. 브런디지 위원장은 남북한의 군사적 문제는 IOC에서 추진하는 단일팀 구성 문제와는 별개이며 남한의 외교 행위를 정치적 행위라고 본 것이다.

KOC 제명하라는 의견까지

홍명희 위원장은 1959년 8월 30일 자 서신에서 오토마이어 사무총장에게 곧 로마 올림픽(1960.8.25~9.11)을 위한 축구 예선전이 시작되는데 남과 북의 단일팀이 출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단일팀 실현을 위한 긍정적인 답변을 바란다고 IOC를 재촉한다.

남한이 단일팀 논의에 응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자 IOC 내에서는 소련, 불가리아 등 공산권 IOC 위원들을 중심으로 KOC를 제명해야 한다는 의견들까지 나오기 시작한다.

이에 브런디지 위원장은 남한의 KOC가 왜 단일팀 구성을 반대하는지 알지만 단일팀 구성이 안 되면 북한에 따로 참가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서신을 이상백에게 보낸다.

IOC 내 분위기가 이런데도 KOC는 IOC 총회에서 단일팀 문제로 안건 토의하는 것 자체를 연기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무렵은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고 4월 28일에는 이기붕이 사망하며, 정치인 이철승이 새로운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되는 등 남한 내에서 단일팀에 대해 제대로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단일팀이 안 되면 남한과 별도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북한의 요청에도 IOC는 1960년 2월과 8월 두 번의 IOC 총회에서 남북 단일팀 문제를 거론하지 못한다. 이로써 북한의 올림픽 참가 기회는 1964년 도쿄 올림픽(1964.10.10~24)으로 넘어간다.남한의 요구로 단일팀 논의가 계속 미뤄지자 공산권 IOC 위원들은 남한의 상황이 그렇다면 북한을 따로 올림픽에 참여시켜야 한다며 북한의 요구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자 오토마이어 사무총장은 1962년 1월 10일 KOC에 서신을 보내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전달한다.

단일팀 구성을 위한 북한과의 접촉을 제안했는데 또다시 62년까지 일정을 연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도쿄 올림픽까지는 2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니 어떤 의지가 있는지 알려주기 바란다. 북한은 남한과 같이하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략)  IOC의 이상과 임무는 인종, 종교, 정치와 무관하게 올림픽에 하나로 참여하는 것이다. 모스크바 총회 이전인 5월 전까지 알려주기 바란다.

오토마이어 사무총장은 브런디지 위원장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남한의 단일팀 구성에 대한 의지를 의심한다. 그는 특히 남한이 정치 문제로 이것을 몰아가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의 홍명희는 남한이 단일팀 구성에 대한 의지가 불확실하므로 DPRK OC라도 올림픽에 참가하도록 더는 지체 말고 도와달라는 의견을 IOC에 전달한다.

북한이 이렇게 계속 단일팀 구성을 요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50년대 후반부터 유엔과 IOC에 제3세계 국가들의 가입이 늘어나면서 사회주의 국가와 제3세계 비동맹국가들과의 강화된 대외 관계가 있었다.

마지못해 단일팀 논의 수락IOC는 제59차 모스크바 총회에서도 도쿄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문제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신에 다음과 같이 1962년 9월 1일로 최종 시한을 적시한 결정을 내린다.

우리로서는 북한올림픽위원회를 공식 게시물 목록에 임시로 올리고, IOC는 남북을 대표하는 단일팀 경기 참가와 관련해 의견을 묻는 서한을 남측 위원회에 보낼 예정이다. 그들의 답변은 1962년 9월 1일까지다. 부정적인 답변이 나올 경우 북한올림픽위원회는 1964년 올림픽에 독립팀(independent team)으로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계속되는 IOC의 압박에 KOC 이상백은 1962년 8월 14일 자 서신에서 브런디지에게 단일팀 구성에 동의한다는 뜻을 처음으로 밝힌다.

우리는 항상 올림픽 이상과 정신을 지켜왔으며, KOC는 단일팀 구성을 동의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당신들과 소통하도록 하겠으며, 다양한 요인이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모든 공식 통신은 IOC 사무국을 통해서만 진행하도록 하겠다.

KOC가 태도를 바꾼 이유는 단일팀 구성을 반대한다는 비판에 대한 부담감과 그로 인한 북한의 도쿄 올림픽 ‘독립 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한은 북한이 국제스포츠 사회에 대등한 자격으로 진출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1962년 8월 KOC는 회장에 이주일, 부회장에 이효·장기영·이상백 세 명을 선출했다. 이상백과 월터 정 KOC 명예사무총장이 IOC와 주된 교신 역할을 맡아왔는데 5⋅16 쿠데타 이후 KOC에는 군인 출신 정치인과 언론인이 대폭 보강 되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단일팀 논의에 정부 차원의 대응을 하기 위한 조처였다.  

당시 남한 정부는 외교부 라인을 동원해 IOC에서 단일팀 문제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 뒤 정부 내 논의를 통해 단일팀 구성에 동의했다.이러한 남한의 태도 변화에 대해 오토마이어는 DPRK OC(오토마이어 사무총장은 North Korea라 하지 않고 DPRK라고 했다. 이러한 국호 표기가 일관된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승인 당시 국호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앞으로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KOC로부터 올림픽에 참가할 단일팀 구성에 동의한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드리게 되어 기쁘다. 당신이 항상 단일팀 구성에 찬성해 왔듯이, 우리는 이 해결책이 관련된 모두에게 만족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서울위원회는 앞으로 진행될 과정에 대해 우리와 의사소통을 할 것이며, 우리 사무실을 통해 이 주제에 관한 모든 공식적인 의사소통을 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받은 모든 정보를 당신에게 줄 것이다. 단일팀 성공을 기원하며. 

▲  오토마이어가 KOC에 보낸 서신(왼쪽)과 DPRKOC에 보낸 서신(오른쪽)
ⓒ 브런디지 컬렉션

한편, KOC에도 서신을 다음과 같이 보냈다.

1964년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한 단일팀 결정은 전 세계에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이 내용을 알려드리게 되어 기쁘다. 우리는 가능한 한 어떤 방법으로든 당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남과 북 위원회 대표단이 함께 모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 많은 문제들이 두 위원회 사이에서 해결되어야 하고 우리는 로잔 사무실을 통해 모두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시간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빨리 북한위원회와 연락을 취하면 좋겠다. 미리 감사 드린다. 이 문제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기대하며. 

홍명희는 1962년 6월 제59차 모스크바 IOC 총회 결과를 듣고 환영의 뜻을 밝히며 그 해에만 다섯 차례(7월 27일, 8월 12일, 9월 26일, 10월 19일, 12월 15일)에 걸쳐 KOC에 대표자 회담을 제의했다.

그러나 KOC는 이 제안에 응하지 않고 남북 간의 통신 문제를 이유로 오직 IOC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접촉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이어갔다. 

▲  오토마이어 사무총장이 브런디지 위원장에게 보내는 서신(메모)에는 남한에 대한 불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 브런디지 컬렉션

계속되는 남한의 부정적인 태도에 IOC 위원들 사이에서 ‘남한의 진정성’에 의심을 보이는 발언들이 나오며, 단일팀이 어렵게 되면 이것은 전적으로 남한 책임이라는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오토마이어 사무총장이 브런디지 위원장에게 보내는 서신에도 그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파워볼실시간

남한이 진정으로 협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니, 우리는 북한이 단독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중략) 북한은 선한 의지를 보여주지만, 남한은 그렇지 않다. 오늘 오후 남한 대표와 5분 미팅을 했는데, 스포츠에 대해 정치인과 토론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러한 IOC 내의 분위기에 KOC는 몇 차례 회담 취소를 번복한 끝에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월터 정이 1962년 12월에 로잔을 방문해 남북 단일팀 구성 회담을 개최하기로 동의했다. 이로써 1963년 1월 24일 스위스 로잔에서 첫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당국자 간 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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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황수연 기자] JTBC 수목드라마 ‘런 온’이 초고속으로 설레는 로맨스로 시청자들의 심장을 저격한 가운데, 쿨내 진동하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 역시 뜨겁다. 임시완, 신세경, 최수영 등 모두가 숨기는 것 없이 솔직하고, 돌려 말하는 법 없이 직설적이기 때문. 더군다나 쿨하게 뼈를 때리는 대사들은 감정이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아 더 매력적이었다. 

#1. 임시완 “네 탓하지 말고 그렇게 만들어 놓은 남 탓부터 해”

국민 첫사랑 여배우 어머니, 국회의원 아버지, 세계 랭킹 1위 골프 여제인 누나를 둔 유명한 가족 때문에 어딜 가나 주목받는 단거리 육상 국가대표 기선겸(임시완 분). 남들의 시기 어린 질투와 관심에 그닥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적어도 당연하지 않지만 당연시된 것들에 대해선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반복되는 훈련과 기록과의 싸움,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선수촌에서의 위계질서까지 모두 어렵다는 후배 김우식(이정하)에게 “네 탓하지 말고 그렇게 만들어 놓은 남 탓부터 해”라던 무심한 조언이 그랬다. 암묵적으로 용인돼왔던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그 안에서 개인은 결국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터. 하지만 결국 우식은 다리를 잃기 직전까지 폭행을 당했고, 선겸은 직접 가해자들을 응징하며 위계 폭력 문제를 화두에 올렸다.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라는 감독(서진원)에겐 “제 앞길에 그런 융통성을 바라신다면, 저는 그런 앞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되고 싶은 건 원칙을 지키는 지도자였거든요”라고 일침 했다. 

#2. 신세경 “영화에 번역자 얼굴이 자막이랑 같이 나옵니까?”

대학 동문이 여럿 모인 영화제 뒤풀이에 참석한 영화 번역가 오미주(신세경)에겐 학창 시절부터 그녀가 번역한 작업물을 자신의 공으로 삼아 번역료를 채가던 황국건 교수(김정호)와의 만남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꼰대’ 주정까진 참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집에 가고 싶다는 티를 낸 게 발단이 돼 황교수의 술 세례를 받고 말았다. “여자 번역가들 정신 차려야 돼. 너 그거 적당히 해야 매력이야. 알아?”라는 황교수의 시대착오적인 발언엔 그만 참기로 했다. “제 낯짝 반반한 게 번역이랑 무슨 상관입니까? 교수님 보시는 영화에는 번역자 얼굴이 자막이랑 같이 나옵니까?”라고 조목조목 잘못을 짚으며 사과도 요구했다.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한 통쾌한 순간을 선사한 거침없는 팩트 폭격이었다. 

#3. 최수영 “다 같으면 편할텐데, 귀찮네요”

선겸이 소속된 에이전시 대표 서단아(최수영)는 현실을 직시했다. 자신을 찾아와 후배의 복수를 위해 폭행했다고 덤덤하게 밝히는 선겸에게 화를 낼 법도 했지만, 그보단 폭행 사건의 판도를 뒤집을 전략을 먼저 세웠다. 유망주 우식이 다리를 잃기 직전까지 폭행 당한 걸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던 선겸의 정의감을 이용해 동정 표라도 받자는 명분으로 징계위원회에 소송을 걸겠다는 것. 물론 “누가 지 때렸으면 개가 짖네 했을 거면서. 지부터 좀 사랑하지”라는 팩트를 잊지 않고 짚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 때린 걸로 영웅 만드냐는 선겸의 무던한 질타가 돌아오자 “다 같으면 편할텐데. 귀찮네요”라며 허탈해진 감정을 드러냈다. 애초에 사람은 생각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는 정지현(연제욱) 실장의 위로에 대한 리액션이었다. 모든 사람이 다 내 맘 같다면 현실이 지금보단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한 번쯤 생각해 봤던 이들의 공감대를 자극한 대목이었다. 

‘런 온’ 매주 수, 목 오후 9시 JTBC에서 방송된다.

hsy1452@xportsnews.com / 사진 = 메이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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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고유라 기자] 무키 베츠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스포츠 전문매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20일(한국시간)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이 상은 종목에 상관없이 운동장 안팎에서 전례 없는 노력을 쏟아내며 최고의 운동 정신, 기술, 인격을 보여준 선수에게 수여된다. 올해 수상 후보는 베츠 외에 아자 윌슨(WNBA), 지아니스 아데토쿤보(NBA), 노박 조코비치(테니스)가 있었다.

올해 2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다저스로 트레이드된 베츠는 LA 다저스와 함께 한 첫 시즌에서 팀의 1988년 이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이어 개인 5번째 골드글러브, 4번째 실버슬러거상을 수상했고 내셔널리그 MVP 최종 후보에 올랐다.나눔로또파워볼

포스트시즌에서는 2루타 8개, 홈런 2개를 포함해 총 21안타 6도루 타율 0.296을 기록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는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멀티히트 3차례를 기록하면서 결정적인 순간 본인의 능력을 발휘했다.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영상 통화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베츠는 “월드시리즈 우승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다. 그것이 내가 다저스에 온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꼭 성취해야 했다”고 말했다.

베츠는 이어 “언젠가 명예의 전당에서 헌액 수락 연설을 하고 싶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12년이 더 남았고 그 사이 몇 경기를 더 치르든 한 경기 한 경기를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포티비뉴스=고유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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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김예지 인턴기자]

장윤정·도경완 부부의 아들 도연우가 효심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20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는 도경완과 아들 연우, 딸 하영 도플갱어 가족이 자체적으로 ‘2020 도플갱어 어워즈’를 개최, 올 한해를 되돌아봤다.

아나운서 도경완은 본업을 살려 시상식 MC로 완벽하게 변신했고, 아들 도연우는 흥겨운 노래와 댄스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만들었다는 공을 인정받아 ‘가상’을 수상했다.

도경완은 연우에게 “이 영광을 누구에게 돌리고 싶나”라고 물었고, 도연우는 “엄마 사랑해”라며 장윤정에게 돌렸다.

도경완이 “엄마와 아빠 중에 엄마를 고른 이유가 뭔가”라고 다시 묻자 연우는 “엄마가 저를 힘들게 낳아 주셨다”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엄마한테 한 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연우는 “엄마 우리 행복하게 살자. 건강하게 살자”라고 말해 훈훈함을 자아냈다.

한편, 장윤정·도경완은 지난 2013년 결혼해 연우, 하영 남매를 뒀다.

[뉴스엔 안형준 기자]

양키스가 워렌과 계약한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12월 21일(한국시간) “뉴욕 양키스가 애덤 워렌과 계약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MLB.com에 따르면 양키스는 워렌과 마이너리그 계약에 합의했다. 아직 계약이 공식 발표되지 않았고 정확한 계약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프링캠프 초청장이 포함된 스플릿 계약으로 보인다.

1987년생 우완 워렌은 양키스 출신으로 양키스와 인연이 깊은 투수다. 2009년 신인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양키스에 지명됐고 2012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2016시즌을 앞두고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 됐지만 2016시즌 도중 트레이드로 양키스에 복귀했다.

2018시즌 도중 트레이드로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했고 2019시즌을 앞두고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계약해 2019시즌을 샌디에이고에서 보냈다. 2019년 겨울 다시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양키스에 복귀한 워렌은 2020시즌 개막을 앞두고 방출됐고 소속팀 없이 2020시즌을 보낸 뒤 이번에 다시 양키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워렌은 빅리그에서 8시즌을 뛰며 323경기(21GS)에 등판해 492.1이닝을 투구했고 30승 24패 57홀드 6세이브, 평균자책점 3.53을 기록했다. 2019시즌 샌디에이고에서는 부상을 당하며 25경기 평균자책점 5.34로 부진했다.

워렌은 커리어 하이 시즌이던 2014년(69G 23H ERA 2.97)을 비롯해 양키스에서는 7시즌 동안 246경기 평균자책점 3.18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과연 워렌이 다시 양키스타디움 마운드에서 위력투를 펼칠지 주목된다.(자료사진=애덤 워렌)파워볼분석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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